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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명이 죽은 열차 사고, '세계 최고 정시도착률'의 이면 글자 확대 글자 축소
       날짜 : 14-06-16 10:58     조회 : 1879     트랙백 주소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30>후쿠치마야선 참사, 그 후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이 글은 박흥수의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29회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후추치마야선 탈선 사고 '2부'인 셈입니다. (관련 기사 : 어머니의 눈물 "철도 민영화가 내 딸 죽였다")

일본 최악의 철도 사고 중 하나인 후쿠치마야선 탈선 사고는 2005년 4월 25일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107명이 희생됐고 562명이 다쳤습니다. 한국의 '세월호 참사'보다 약 9년 앞선 사고입니다. 9년이 흘렀지만 일본 사회는 이 사고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정부와 운영사(JR서일본)을 상대로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미래를 보는 듯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후쿠치마야선 열차 참사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수많은 이용자가 몰리는 철도에서 하루아침에 100명이 넘는 사람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커다란 문제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사고 조사를 담당했던 일본 국토교통성은 2007년 발표한 최종 보고서를 통해 '과도한 수익 위주의 기업 체질과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기업 환경'을 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기도 했습니다. 필자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지난 2012년 5월, 직접 일본을 방문, 후지사키 씨 등 후쿠치마야선 참사 피해자들을 만나 취재를 했습니다. <편집자>

▲후쿠치마야선 사고로 딸을 잃은 유가족  후지사키 씨 ⓒ박흥수
▲후쿠치마야선 사고로 딸을 잃은 유가족 후지사키 씨 ⓒ박흥수

후쿠치마야선 피해자 유가족 후지사키 씨(2012년 당시 72세)는 사고 조사 보고서에도 나오지 않는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회사도 문제지만 노동자도 바뀌어야 합니다. 노동조합이 무너진 JR서일본이었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회사 문화도 자리를 잡게 된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사고도 난 것이지요."

일본의 철도 민영화는 철도를 개혁하겠다는 목적보다, 철도노조를 깨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민영화를 주도한 사람들까지도 공공연히 말을 한다. 전후 일본 노동 운동의 주력 조직이었으며 사회당의 조직적, 재정적 기반이었던 국철노조를 분쇄하는 것은 일본 우파진영의 오랜 숙원이었다. 1986년 총선에서 보수 세력이 압승을 거두자 우파의 거두 나카소네 수상은 철도 민영화를 밀어붙였다. 박근혜 정권이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지난해 수서KTX주식회사(수서발KTX)를 밀어붙인 것도 일본 철도 민영화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일본 국철 노조는 민영화 이후 7개의 노조로 갈라졌다. 이 과정에서 JR서일본의 경우는 '어용노조'를 세웠다. 노조가 회사를 견제하거나 감시하기는커녕 경영진의 마름 역할을 했다. 결국 노동자의 권리뿐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까지 무너지게 된 결과를 낳았다.

한국의 국토교통부가 수서발KTX를 분리하려는 이유 중 하나도 그렇다. 코레일이 통합 운영 될 경우 거대 강성노조의 탄생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수서발KTX는 JR서일본처럼 이윤이 최고인 회사의 경영방침을 몸 바쳐 사수하는 허울뿐인 노조를 만들려고 할 것이 뻔하다. 그들은 "불량바퀴가 위험하다"며 시민사회와 언론에 알리는 철도노조 같은 골치 아픈 노조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JR서일본 직원은 사고 수습 뒤로 하고 지사장 강연에 동원됐다

급 곡선을 돌다 탈선한 후쿠치마야선 5418M 열차는 맨션아파트 1층의 기둥으로 돌진했다. 맨 앞 차량은 지하실 공간으로 들어갔고 두 번째 차량은 잭나이프 현상을 받아 옆면이 건물 벽에 부딪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잭나이프 현상이란 철도 사고에서 앞 차량이 충돌 등으로 급히 감속하게 되면 그 충격으로 뒤에 따라오던 객차들이 잭나이프처럼 접히는 현상을 말한다. 앞선 연재에서 다뤘던 독일의 1998년 ICE 충돌사고(관련기사 : 세계 최악 고속철 참사, 세월호와 다를 바 없었다 )에서도 이 잭나이프 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현장에 출동했던 구조대는 처음에 벽면에 부딪혀 구겨진 객차를 선두 차량으로 알았다. 맨 앞 차량이 지하에 박혀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현장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맨 앞 차량은 지하로 처박히고 둘째 차량은 벽에 부딪혀 으스러졌고 세 번째 차량은 두 번째 차량에 달라붙었다. 네 번째 차량은 반대편 선로로 넘어갔다. 다섯 번째 차량부터 뒤의 세 칸은 선로 위에 있었다. 차장은 사고가 나자마자 주변의 열차에 비상 정지 신호를 보내는 무선 방호 장치를 작동시켰으나, 사고의 충격으로 전력 공급 장치가 끊겨 말을 듣지 않았다. 반대편 하행선에는 신오사카 발 키노사키 온천행 특급 기타킨키호가 접근 중이었다. 곡선 선로인 관계로 기타킨키호 기관사가 눈으로 사고를 확인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마침 맨션아파트 건너편 도로에 서 있다가 사고를 목격한 주부가 있었다. 이 여성은 맨션아파트 옆 철도 건널목에 가까이 서 있었다. 선로 위에 처참하게 쓰러진 객차를 향해 달려오는 또 다른 열차를 본 여성은 "건널목에서 사고가 나면 비상정지버튼을 눌러주세요"라는 TV 공익 광고 방송이 생각났다. 여성은 TV에서 본 장치를 찾아 정지 버튼을 눌렀다. 건널목에서 비상 상황을 알리는 불빛이 작동하는 것을 본 기관사는 놀라서 비상 제동을 걸었다. 열차 바퀴가 쇳소리를 내며 선로 위를 미끄러졌고, 사고지점 100미터 앞에 멈춰 섰다. 철도에서의 거리 개념으로 보면 100미터는 초근접 거리다. 이 여성의 순간적 대처가 아니었으면 후쿠치야마선 참사는 몇 배로 커졌을 것이다.

피해는 사고 열차의 맨 앞 칸과, 쿠킹호일처럼 구겨진 둘째 칸이 제일 심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잔햇더미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곧이어 맨션아파트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공장의 노동자들이 달려 나와 부상자들을 구조했다. 사고 수습이 이루어지는 기간 내내 이 공장은 조업을 중단하고 체육관을 개방해 피해자 가족들을 도왔다. 사고 열차에는 다른 업무를 보기 위해 탑승한 JR서일본 소속 기관사 두 명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보나, 인간의 도리로 보나 자신들의 회사 차량이 사고가 났다면 인명 구조나 2차 피해 예방을 먼저 하는 게 당연하다. 일반 승객들이 모르는 열차의 기계 장치 조작이나 반대편 열차에 대한 정차 조치 등 긴급하게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자신들의 업무는 뒤로 미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 형성된 회사의 일방적 지시 문화와 경영효율에 목을 매는 풍토는 인간적 도리마저 팽개치게 했다.

출근 중이었던 기관사는 자신의 결근으로 승무할 열차가 운행 중지되거나 지연될 경우, 회사의 책임 추궁이 두려워 구조 활동을 뒤로하고 서둘러 출근길에 나섰다. 또 다른 기관사는 JR서일본 오사카 지사장의 강연에 동원되는 중이었는데, 회사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회사는 지사장의 강연에 가도록 지시했고 이 기관사는 그대로 따랐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 또 다른 사고가 예견되는 상황에서는 다른 것을 따질 틈이 없다. 구조에 나서는 것은 인간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철도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고 사고 대처 매뉴얼을 주기적으로 숙지하도록 되어있는 기관사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철도 경쟁 체제나 민영화 같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놓는 세상에서 인간은 측은지심조차 버리게 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맹자는 말했었다. 후쿠치마야선 사고 열차에 탔던 JR서일본의 기관사나 세월호 침몰 현장에 있던 기관사나 제일 먼저 해야 했을 일은 인명 구조였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먼저 회사에 전화를 걸어 지침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윗선의 지시만을 따르고 책임추궁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버린 세상이란 얼마나 끔찍한가?

▲후쿠치마야선 참사 현장의 분향소 ⓒ박흥수
▲후쿠치마야선 참사 현장의 분향소 ⓒ박흥수

세계 최고의 정시도착률, 오히려 위험하다

사고 소식이 속보로 퍼지자 연락이 끊긴 가족들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왔다. 구조대와 경찰, 취재진, 실종자 가족들로 현장은 이내 가득 찼다. 인명 구조는 더디게 진행됐다. 맨션아파트 지하에 유류 저장고가 있었는데 사고 충격으로 기름이 유출되고 유증기가 발생했다. 구조에 꼭 필요한 전동 톱이나 중장비를 사용할 수 없었다. 작은 불꽃이라도 유증기와 결합하면 폭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유증기를 빼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실종자 가족들은 이 끔찍한 현실이 꿈이기를 바랐다.

실종자 가족들과 체육관 바닥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지 3일째, 후지사키 씨에게 딸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후지사키 씨의 딸 나카무라 미치코 씨는 열차의 맨 앞칸에서 발견되었다. 곧 보자며 밝은 목소리로 나눴던 전화 통화가 딸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엄마의 영정을 앞에 두고 우는 어린 손자는 후지사키 씨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사고가 나자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 속으로 빠져들었다. 세계 최고의 철도 기술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일본에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사고의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후쿠치마야선 사고는 JR서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전에는 1분 1초도 어긋나지 않는 일본 철도 시스템에 대해 서구의 선진국들이 찬사를 보냈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 다르게 조명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사회가 과연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사회인가. 그에 대한 의문이 새롭게 제기됐다.

2005년 4월 27일 자 <뉴욕타임스>는 "정밀한 일본" 신화에 대한 허구를 지적한다. 일본주재 특파원은 일본 철도 노동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 문화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일본 사람들은 열차가 항상 제시간에 올 거라는 것을 믿고 있다. 일본 사회는 아주 작은 여유조차 없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을 포함한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 승객들은 기차가 제시간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 가운데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정시도착률'을 자랑하는 나라다. 열차에 사람이 치여 응급조치를 하는 와중에도, 일부 승객은 약속에 늦게 생겼다며 항의를 하고 민원을 넣는다. 역에서 정차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사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상대적으로 열차 운행간격이 조밀하지 않은 일반 간선 열차에서 정차 시간이 조금 길어지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회사 측의 정시운행 압박은, 이를테면 유치원생 단체 여행객의 느린 승하차 속도를 재촉하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이런 행위들은 열차 승무원과 기관사에게 적지 않은 압박으로 다가온다. 엄격한 정시 운전을 자랑하는 것 보다, 열차가 조금은 늦을 수도 있다고, 그것이 더 안전하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자세라고 말하는 사회는 요원한 것인가?

사고 이후 사고 원인을 둘러싼 문제는 법정으로 옮겨졌다. 유가족들은 JR서일본의 책임이라며 회사 대표에게 책임을 물었다. 회사 측은 유가족들에게 소송을 취하할 것을 회유하면서도 실력 있는 변호사를 동원해 재판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법원은 '일본 형법상 업무상 과실사고는 법인이나 회사 대상이 아니라 개인만 대상으로 하기에 회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 결국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7년간 이어진 법정 소송에서 법원은 야마자기 마사오 전 JR서일본 사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유가족뿐 아니라 일본 국민들도 분노했다. 정부와 회사를 비롯한 일본 사회 전체가 사고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고 죽은 기관사에게만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난이 일었다. 그러나 이미 결론이 난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유가족들은 사고 날짜를 따 '4.25 네트워크'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후지사키 씨는 죽은 딸을 위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분열을 노린 사측의 회유 등으로 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후쿠치야마선 열차 사고의 희생자들은 개별적으로 회사와 보상 협상을 벌였다. 보상금조차 서로 누가 얼마를 받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측은 유가족과의 개별 협상에서 시간을 끌수록 보상액이 적어진다며 빠른 보상 합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루빨리 사고의 기억을 지워버리겠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사고 이후 피해자와 유가족의 의견을 들어주는 척하던 정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성의 회복'을 요구했다. 아픈 과거를 잊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전개되는 양상도 비슷하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며 유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월드컵 열기가 세월호 사고를 뒤덮길 바라는 이도 있다. 정치 집단은 세월호 사고가 자신들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세월호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대충 봉합되거나, 일부 세력들의 정치적 계산 때문에 규명 작업이 방해받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탈선사고 현장에서 상주하며 방문자들에게 예를 올리는 JR서일본 직원들 ⓒ박흥수
▲탈선사고 현장에서 상주하며 방문자들에게 예를 올리는 JR서일본 직원들 ⓒ박흥수

'가만히 있으라'는 일본 사회, 세월호 참사 겪은 한국 사회

사고로 딸을 잃은 후지사키 씨, 그리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들을 두게 된 히로미 씨(2012년 당시 54세)는 2005년 4월 25일의 사고 이후 삶이 바뀌었다고 했다. 조용히 감내하는 일본 사회의 끔찍함이 사고의 후유증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히로미 씨는 숨죽여 공부할 것만 강요하는 일본의 경쟁 교육 자체가 전쟁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를 닮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사회에 영향을 주고 결국 JR서일본 같은 회사가 나타난 것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고 말하지 않으려 하는 일본 사회에서 저는 소수파입니다. 일본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지요.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예절 바른 것이라고 교육받죠. 하지만 저는 이제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습니다."

히로미 씨와의 지난 2012년 인터뷰를 다시 상기해 보니 세월호의 그것과 너무도 닳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부정과 불의, 편법에 찌든 사회와 그 협력자들이 숭배하는 계율이었다. 후지사키 씨는 일본 정부나 JR서일본 측과 싸우다 지쳐서 가끔 포기할 마음이 생길 때면, 꿈속에서 죽은 딸 미치코가 나타나 왜 자신이 죽어야 했는지 묻는다고 했다. 딸이 꿈속에서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을 막아달라고 부탁하고 사라지면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다짐하게 된다는 후지사키 씨의 표정은 단호했다.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질문을 하기 전 '이 질문이 후지사키 씨와 히로미 씨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하고 머릿속에서 고민한 후 입을 열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가슴이 먹먹했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 모두가 심장을 아리게 했다. 아침에 환한 웃음으로 현관문을 나섰던 아들, 딸, 부모, 형제들을 하얀 천에 둘러싸인 주검으로 만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가족들의 삶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밀려오는 죄책감에 잠조차 못 이루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2012년 6월, 한 달 만에 다시 오사카를 방문했다. 일본 철도에 대해 몇 가지 조사를 하고 철도 관계자들을 만나는 일정 때문이었다. 오사카를 다시 떠나는 날, 예약된 도쿄 행 신칸센 열차의 출발 시각까지 4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필자는 일행들과 떨어져 신오사카 역에서 아마가사키 역으로 향했다. 아마가사키 역의 개찰구를 나와서는 한 달 전의 길을 따라 사고 현장으로 다시 갔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맨션아파트와 그 옆의 철도 건널목이 그대로 있었다. 사고 열차가 부딪쳤던 아파트 벽면의 균열들이 오래된 거미줄처럼 남아있었다. 주변에는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제단에 향불을 피웠다. 바로 옆 철길에서 열차가 지날 때마다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제단에 바쳐진 꽃잎들이 횡풍을 받아 흩날렸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여성과 마주쳤다. 유모차에는 작은 고양이 두 마리가 타고 있었다.

삶은 나와 관계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일본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고양이는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고양이의 죽음을 보아야 한다. 일본에는 고양이 전용 납골당이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추모의 정은 깊다. 이별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고양이를 키우는 이유는, 비록 그것이 동물이지만 인간의 삶과 기꺼이 관계를 맺고 그 시간들을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한 가족들의 생명을 책임지지 못 했다는 자책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남은 삶을 견딜 수 없게 된다. 책임질 무엇이 없으면 사람은 살아가지 못한다. 후쿠치야마선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 중에도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있었다.

후지사키 씨와 히로미 씨는 덤덤한 표정으로 '책임'을 이야기 했다. 남겨진 사람들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본 정부나 정치인들, 회사, 심지어 법원까지도 책임을 묻지 않는 모습을 목격했다. 일본 사회를 '책임 지는 사회' 변화시키는 것죽어간 가족들에 대한 마지막 책무 라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에서 보여준 한국 사회의 모습도 일본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사고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무능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데서 나타난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열심히 수사를 하고 있다. 국회에서 국정 조사도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결과가 과연 사고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토대로 작용할 수 있을까. 사리사욕과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또 다른 난파선을 만들어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 사고가 잊혀지는 것이라고 했다. 후쿠치야마선 사고 유가족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이 사고가 잊혀지는 것이라고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사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사회의 치부를 얼른 덮고 빛나는 국가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더 생생히 각인시켜야 한다. 한국 사회가 시시때때로 스스로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만이 유가족들에게 이 땅에서 버틸 힘을 줄 수 있는 길이고, 억울하게 숨져간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혼과 우리 자신들을 위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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